역사가 녹아있는 아름다운 노을, 야경 추천 스폿
산책하며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낙산공원
낙산공원에 가는 경로는 다양한데, 저 날은 보물 제1호 흥인지문에서 출발했다. 조금만 올라도 위 사진처럼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889년부터 1968년도까지 운행되었던 전차가 달리던 장소다. 메리어트 호텔 옆이 전차의 차고지였다.
동대문에서 광나루까지 가는 전차는 뒤쪽에 객차나 화차를 달고 달렸다. 낮에는 주로 승객들이 이용하고 밤에는 그 당시 채소밭이었던 성수동, 왕십리에서 거름으로 사용할 인분 탱크를 매달고 다녔기 때문에 때문에 파리가 들끓었다고 한다.
도성 바깥쪽에서는 각자성석을 볼 수 있다. 농한기가 되면 전국의 백성들이 성곽 건설에 동원되었는데, 하자가 발생하면 보수를 책임지기 위해 담당한 구간에 군현명이나 감독관의 이름과 날짜 등을 새겨놓은 것이다.
성곽길을 따라 오르며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낙산은 내사산 중 가장 낮아 접근성이 좋은 한양도성이다.
시대별로 축성 방식도 달랐다. 낮은 언덕이었던 낙산에서는 자연석을 구하기 어려워 태조 때 토성으로 급히 쌓았던 것은 허물어졌고, 세종 때 석성으로 전 구간을 바꿨다. 숙종 때에는 석공 기술이 발달해 40~45cm의 네모난 돌로 정교하게 쌓았다. 순조 때에는 대포같이 파괴력이 높은 신무기들이 등장해 60cm 정도의 큰 돌을 다듬어 굳건한 성곽을 쌓았다.
무리한 공사로 사망자가 많아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도성 안에 장기전을 대비할 시설이 없어 난이 일어나면 지배층은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 도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또다시 백성들만 고초를 당했다.
영조는 "변란이 일어나면 내가 먼저 성위에 올라 백성과 함께 싸우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도성민들을 훈련시키고, 담당 구역을 지정해 방어하도록 체계를 만들었다.
유민들이 성곽을 담장 삼아 움막을 짓고, 한국전쟁 후 난민들의 판잣집까지 더해지며 달동네로 변모했다. 2007년 공원 주변에 조형물을 설치하고 골목에 벽화를 그려 넣으며 사진 촬영지로 떠올랐고 지속적으로 정비되며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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