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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마미술관/전시] 뒤뷔페展 그리고 빌레글레

by 김깨끗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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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뒤뷔페의 가치관과 예술 놀이

기발한 세계 속 철학적 의미

 

의상
의상 <니니 라 미노드(1973년 1월)>와 <병사(1973년 9월)>

  •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51 (방이동 88-21) 소마미술관 2관
    9호선 지하철 2번 출구에서 소마미술관 2관 바로 연결
  • 문의: 우주스타 070-8015-7895
  • 전시기간: 22/10/01(토)~23/01/31(화)
  • 휴관일: 없음
  • 운영시간: 10:00~19:00 (입장 마감 18:30)
  • 관람요금: 성인 20,000원 / 초중고 학생 17,000원 / 유아 14,000원

 

입구-포토존
입구의 포토존

이번 전시는 장 뒤뷔페 재단이 소장한 뒤뷔페의 회화, 조각 등의 작품 67점과 자크 빌레글레의 작품 32점을 볼 수 있다. 입구 쪽에는 포토존과 자크 빌레글레의 <사회정치적알파벳>이 있으니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

 

 


 

전시-초입
전시장 초입

입장하면 장 뒤뷔페 작가의 사진과 컵으로 만든 포토존이 가장 먼저 보인다.

 

장 뒤뷔페(1901~1985)는 항구 도시 르 아르브에서 포도주 도매상을 하는 부모에게 태어나 가업과 그림을 병행하지 못하고 여러 번의 포기를 거쳐 41세(1942년)에 그림에 절대적으로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화가라 말하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어린아이와 정신병자의 그림 등에 주목하며 권위의식과 편견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프랑스의 현대미술 거장이다. 아르 브뤼트(관습과 의식을 깨뜨리는 사조), 아상블라주(폐품이나 여러 물체를 모아 제작하는 기법)와 같은 개념을 확립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우를루프 시리즈를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연작하며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전시회-포스터우를루프-전시회-포스터
"장 뒤뷔페의 우를루프" 베니스 전시회 포스터 (1964년 6~9월) / 파리 전시회 포스터 (1964년 12월~1965년 1월)

1962년 어느 날 전화통화를 하며 무심코 볼펜으로 끄적였던 낙서의 형태에 매료되어 시작된 '우를루프(L’Hourloupe)'는 프랑스어로 attraper(소리 지르다), gazouiller(새가 지저귀다), loup(늑대)라는 단어를 조합해 뒤뷔페가 만든 신조어로 '새가 지저귀고, 늑대가 울부짖는다.'는 말로 '순수하고 원시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화가의 일상 속 사물들을 검은색 굵은 테두리 안에 비정형, 추상화된 형태로 뒤섞어 표현한 뒤 흰색과 붉은색, 파란색으로 색을 채워 넣는 양식이다.

 

"나는 관객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것들은 매우 우연적이고 논쟁적일 수 있고 관객에게 이해되지 못한 채로 남을 가능성이 다분한 기획이다." -장 뒤뷔페

뒤뷔페는 대중에게 이 연작을 즉시 공개하지 않기로 정했었지만 팔라조 그라씨의 감독인 파울로 마리노티의 간곡한 초청으로 1964년 베니스 시에서 첫 전시를 개최하는 것에 동의했다. 드뷔페의 우려와는 다르게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베니스 전시회에 이어 즉시 파리의 두 갤러리에서 공동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직접 서체를 만들어 낸 배니스 전시회 포스터와 달리 파리 전시회 포스터는 폰트가 사용되었다.

 

기억의-사슬
<기억의 사슬Ⅰ> 1964년 10월 28일 종이에 비닐, 콜라주

서로 얽혀있는 검은색 테두리 안의 여러 모티브들의 각 개채와 장소 그리고 상징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충만과 공허, 존재와 비존재, 실제 하는 것 또는 상상에 속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한 불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다.

 

추정상의-장소
<추정상의 장소(동물, 나무들과 인물들)> 1966년 3월 15일

우를루프를 통해 뒤뷔페는 사람들이 예술을 보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기발한 세계를 재창조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야만의 가치를 상당히 믿고 있다. 말하자면 본능, 열정, 기분, 폭력성, 광기 말이다." -장 뒤뷔페

 


 

<쿠쿠바자>

우를루프 연작은 쿠쿠바자 퍼포먼스를 통해 정점에 올랐다. 거의 정면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다양한 평면 모형의 공연은 시나리오나 별다른 시작과 끝이 없이 진행된다.

 

"회화와 애니메이션이 발전한 것처럼, 그것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이미지에 그치지 않으며 실제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당신을 초대하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쿠쿠바자는 무엇보다도 철학적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 -장 뒤뷔페

 

실현-가능한-모형
<실현 가능한 모형>
실현-가능한-모형
<실현 가능한 모형> 가벼운 브리스톨 종이에 매직펜, 크래프트 종이에 절단과 부착

모형과 그 스케치도 볼 수 있다.

 

환하게-빛나는-고독
<환하게 빛나는 고독> 1974년 10월 캔버스에 비닐

"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원시적이며 빵을 갈망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겠지만 예술 없이는 지루해 죽는다." -장 뒤뷔페

 

폴리우레탄-폼쿠쿠바자-조각
<방랑자> 1973년 3월 폴리우레탄 폼에 아크릴릭 회화 / <쿠쿠바자 조각> 발포폴리스티렌

뒤뷔페는 1971년부터 파리 근처의 카르투셰리 드 방센느에 작업장을 열었다. 그의 조수들은 그곳에서 관객을 위한 무대 실물 장치, 페인트 및 모빌 절단기를 구성한 대형 패널을 작업했다. 또한 뒤뷔페는 다양한 재료로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벽보
<모리스 컹탕 광장> 1975년 4월 4일 찢어진 벽보를 캔버스에 풀로 부착 (우)

자크 빌레글레는 우연히 산책을 하다 발견한 장 뒤뷔페의 포스터를 자신의 작업 <비회화속의 회화>에 사용하기 위해 한 장을 뜯어 가져 갔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5년에 렌느의 문화회관에서 <우를루프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게 되면서 뒤뷔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자크-빌레글레
<까르푸 몽마르뜨-랑뷔토>

뒤뷔페가 실험 영화 '도시의 신화'의 대본 작업을 할 때 빌레글레의 포스터는 영화의 중심축 중 하나가 되었다.

 

앉아-있는-남자가-있는-경치
<앉아 있는 남자가 있는 경치> 1974년 12월

뒤뷔페 본인이 아닌 조수들이 프로젝터를 사용해 캔버스에 작업한 작품이다. 일부 사람들은 작가가 직접 터치한 캔버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분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뒤뷔페는 이 과정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캔버스를 칠할 때보다 드로잉에 담긴 펜의 특정 효과를 더욱 충실하게 재현해 낸다고 주장했다.

 

새가-있는-경치
<새가 있는 경치> 1974년 9월

"사용된 기법에 따라 작품이 평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가이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작업의 미덕과 아무 상관이 없는 전문가들의 부차적인 부분과 물신숭배를 보여준다." - 장 뒤뷔페

 

<페넬로페(미공개 시퀀스)> 레이몽 앵스 & 자크 빌레글레

레이몽 앵스와 빌레글레의 첫 번째 공동 프로젝트 '페넬로페'는 실험적 추상 영화로 1950년에 시작해서 1954년에 중단돼 미완성의 상태로 남았다.

 

두 예술가는 회화를 그림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에 리듬을 부여하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카메라에 초점을 맞추고, 세로로 길게 홈이 파인 특수렌즈 즉 최면경을 붙였다. 최면경은 앵스에 의해 구상되었고 빌레글레가 그림을 그려 발전시켰다. 욕조에 담긴 물처럼 색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추상적 구성 작품이다. 다채로운 형상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강철의 후예 - 소세 데 코르새르(생말로)> 1974년 8월

1947년 학생이었던 빌레글레는 방학을 맞아 바닷가 길을 산책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서양 방벽의 폐허에서 나온 철사 조각 '강철의 후예'를 주웠다. 그는 이 철사 조각을 보며 '공간 속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추상 미술의 지나치게 추상적인 견해에 대해 반대해 생긴 미술 사조 '누보 리얼리즘'의 인식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벽보-예술
자크 빌레글레

벽보와 정치적 그라피티는 빌레글레의 창작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벽보-예술벽보-예술
벽보

벽보들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사진으로, 잡아 찢기에서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라피티 낙서로 변했다.

 

자크-빌레글레
자크 빌레글레

프랑스의 역사와 캠페인들, 68 혁명과 같은 혁명들, 선거 캠페인 등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계속된 갈등의 증거물이었던 벽보는 반체제적이고 공격적이며 때로는 해학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다.

 

캥페르-사람들의-작업
<캥페르 사람들의 작업 - 펜아르 수영장 - 르 카르티에> 2006

1980년대부터 사회가 변하며 도시에는 벽보들이 점점 사라졌다. 자크 빌레글레는 파리 시내를 떠나 교외 지역이나 지방까지 가야 벽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부터 PC통신이 발달하며 벽보들은 공격적이고 장난스럽고 경박스럽고 터무니없어졌다. 빌레글레는 더 이상 벽보를 이용한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고향 캥페르의 르 카르티에 아트 센터에서 80번째 생일을 맞아 회고전을 준비하던 그는 여러 형광빛의 그의 초상이 있는 벽보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동네 주민들에게 이 벽보를 찢으러 오라고 초대했다. 이로 인해 '찢어진 벽보 최종 시리즈' <캥페르 사람들의 작업> 40여 점이 탄생했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데콜라주 작업이다.

 


 

회화
초기 작품들

무역 사업을 하던 41세의 드뷔페는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원시 미술과 같다고 생각한 아르 브뤼트 작품들을 쏟아냈다.

 

적나라한
<적나라한> 1945년 6월

<적나라한>은 뒤뷔페가 화가로서 열망적 동기를 일으킨 그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며 그의 초창기 작품 중 대표작이다. 이 시기 그는 스스로를 아마추어라 표현했다.

 

왈츠새를-먹는-사람들
<왈츠> / <새를 먹는 사람들> 화보집을 위한 석판들 1944

1942년 이후 '문화기관에 대한 거대한 불안정화 사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의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 본질적이고 독창적인 감동이 나타난다.

 

커피-그라인더
<커피 그라인더>

아름다움과 잘 그리는 것에 대한 상투적인 관습에 대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과 기분이 즉각적으로 발산되는' 예술의 이익적 측면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모나리자
<모나리자(여자의 큰 두상)> 1948 5~6월 캔버스에 유채

뒤뷔페가 모나리자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작품으로, 틀에 박힌 정규 교육기관에서 배운 듯한 그림에 대한 예술가의 거부감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금반지초록-모자를-쓴-남자
<금반지> 1958년 4월 2일 / <초록 모자를 쓴 남자> 1954년 7월

1950년대 작품은 그의 재료와 질감에 대한 활발한 관심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두꺼운 반죽으로 그려진 그림들과는 반대로 에나멜페인트라는 산업 물감으로 평평한 그림들을 그리며 새로운 경험을 하며 이 재료 특유의 건조 과정에 흥미를 가졌다.

 

1957년부터 뒤뷔페는 '큰 크기의 그림들로 땅을 찬양하고 기리는 연장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아쌍블라주
<맨발의 지클로> 1954년 6월 캔버스에 유채(아쌍블라주)

뒤뷔페는 '아쌍블라주' 개념의 창시자로 주류 문화에 도전하는 급진적 아티스트다.

 


 

휴게실특별관
휴게실 / 특별관

4 전시실을 나가 휴게실을 지나면 특별관이 나온다.

 

우를루프포토존
우를루프의 정원 체험

우를루프를 체험할 수 있는 포토존이 있다. 검은색 줄무늬 티셔츠 같은걸 입고 가면 사진 찍을 때 재밌을 것 같다.

 

특별존
특별존

그리고 장 뒤뷔페의 작품 활동 당시 영상이 상영되는 특별존으로 마무리된다.

 

굿즈도록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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